2017년 1월 28일 토요일

[유부녀시리즈] 형수님 3부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창 밖을 향해 있었다. 

난 그녀의 의중을 알 수 없었지만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는 생각에 조용히 대답했다.



“네.”



대답을 들은 건지, 아닌 건지 그녀는 다시 한 참을 침묵했다.



“그 일 있고 나서 이틀 후가 제 배란일 이었어요. 그이랑 아이를 만드는 날이었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다시 술을 들이킨 후 이야기를 이어갔다.



“도련님은 아직 모르시겠지만 잠자리를 같이한다는 건 부부에게 많은 것을 의미해요. 그런데 우리에겐 아이 만드는 의미 외엔 아무것도 아니죠. 언제부터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오래된 것 같아요. 느낌도 없고 감정도 없어요. 그런데도 애를 가져야 한다는 것 만으로 살을 섞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싫은지……”



나는 진지하게 듣고 있기는 했지만 형수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이해하거나 공감하기엔 너무 어렸다.



“그런데,,, 다시는 그이와 감정을 나눌 수 없을 줄 알았는데……”

“……”

“도련님 덕분이에요.”

“네?”

“그 날도 처음엔 아무 느낌 없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 도련님 자위하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민망하지만 거기서 자극을 받았어요. 제가 반응을 보이니까 그이도 달라지더군요. 몇 년만이었는지! 아무튼 그이는 그게 아이가 생길 신호라고 생각하나 봐요. 제가 일을 그만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잘 되었네요. 그럼 이번엔 꼭!”



그러나 형수님의 얼굴엔 그런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무언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그 날 이후 매일 잠자리를 했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어요.”



형수님은 다시 술잔에 입을 갖다 대고는 긴 한숨을 쉬었다.



“도련님!”

“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께요.”



나는 방을 비워달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런 상황이고 보면 건너 방에 있는 내 존재가 거슬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나 형수님은 전혀 의외의 말을 꺼내 나를 당황시켰다.



“도련님 자위하는 모습 제게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절 미친년이라고 욕해도 좋아요. 하지만,,,”



그 순간의 형수님 눈빛은 술에 취해있었지만 슬픈, 그것을 넘어선 절박함이 서려있었다. 

그리고 더 말하지 않아도 하고자 했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스스로 끌어낼 수 없는 욕정을 끌어내 달라는 것이라. 

하지만 난 두려웠다. 경험이 많아진 지금에도 그런 상황을 의연히 대처할 자신이 없다. 

거기엔 많은 인간관계가 얽혀져 있고 상상도 못해본 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형수님은 식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나는 그런 형수님을 안아 올려 안방 침대 위에 뉘였다. 그리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내 감정 때문일까? 잠이 든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은 슬프고 애처로워 보였다.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쉽게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형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보다 그와 관계된 잡다한 일부터 

내가 가진 정리되지 않은 관념들이 좁은 책상 위에 한꺼번에 펼쳐진 꼴이었다.

다음날 친구에게 기름 만땅 채워주는 조건으로 차를 빌려 바다를 찾았다. 

그러나 드넓은 바다 역시도 내게 답을 내 놓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젯밤 잠을 설친 후의 피로가 몰려왔다. 

의자 등받이를 제치자 금새 잠이 쏟아졌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자 주위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의자 등받이를 바로 세우는 순간 아랫도리가 뻑뻑해져 아팠다. 

자극에 의해서가 아니라 잠에서 깰 때 경험하는 자연발기상태가 되었던 탓이다. 

순간 어지럽게 널려져 있던 머리 속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꼈다. 

동물적인 본능,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동물적인 본능에 모든 걸 맡겨보고 싶어졌다. 

그것이 깨달음이 아니라 이 상황을 합리화시키는 변명거리를 찾은 데 불과하지만 내 마음은 굳어졌다. 

그렇게 마음에 결정을 내리고 나니 서둘러 돌아가고 싶었다. 

묘한 흥분과 기대들로 이 길을 오던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에 설레고 있었다.



차를 돌려주고 집에 오니 10시가 넘었다. 

거실엔 불이 꺼져있었고 형수님의 인기척도 없었다. 

순간 설렘에 방망이질 치던 가슴에 찬물을 끼 얻은 것 같았다. 

그제서야 배가 고파졌다. 주방으로 들어가 김치 하나만 꺼내 밥을 떴다. 

그 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네.”

“뭐하세요?”



형수님은 신발을 벗으시면서 물었다.



“밥 먹어요.”

“아직, 식사도 안 하셨어요?”



양 손에 찬거리를 가득 든 형수님께서 주방으로 들어오셨다.



“아니, 왜 김치만 놓고 먹어요?”

“그냥 귀찮아서요.”

“하여튼 남자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찌게 데우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잠시만 있어봐요.”



형수님은 뚝배기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놓으셨다.



“오늘 수영장 아르바이트 하는 날 아니었던가요? 안 보이시던데.”

“메인 코치님이 일이 있으시다고 해서.”

“그럼 내일 하시는 거에요?”

“네.”



형수님의 행동과 말투는 어제 일을 전혀 기억 못하는 듯이 보였다. 

이미 마음에 결정을 내린 나로썬 그런 형수님 행동이 섭섭하게 느껴졌다. 

나는 조금씩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밥을 먹은 후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줄기가 머리에 부딪히며 온 몸을 훑고 내렸다. 

욕실은 금새 증기로 가득 차 뿌옇게 변했다. 

머리 속은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까 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 순간 밖에서 형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차 드실래요?”

“네, 금방 나갈게요.”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거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셨다. 

TV를 보고 있었지만 머리 속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형수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낼 법도 한데 표정을 보아선 아무래도 어제 일을 기억 못하는 것 같았다.

‘과음해서 필름이 끊긴 것일까?’

결국 눈치만 보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어제 이 시간엔 나만 결정하면 끝날 일인 줄 알았는데 이런 복병이 있을 줄이야. 

그 때문에 또 다시 편치 않을 밤을 보내야 했다.



다음날도 수업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고민의 연속이었다. 아니 고민이랄 것도 없다. 

여기에 대한 답은 내가 용기를 내느냐, 마느냐에 달린 것이다. 

다만 형수님이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없었던 일로 하자 할까 겁내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수영장에서 형수님을 마주하자 용기를 내어보리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형수님은 수영강습이 끝나기 30분전이면 어김없이 수심이 제일 깊은 라인에서 수영을 하신다. 

그리고 강습 끝남과 동시에 휴식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들리면 

아기들 물놀이 하는 얕은 풀로 이동해서 체온을 유지하는데, 우린 보통 거기서 뒤늦게 인사를 한다. 

그날도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형수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아기들은 본능적으로 수영을 한다던데,, 저 애기 정말 이쁘죠?”



형수님은 물장구를 치는 아기들을 보며 웃고 있었지만 

나의 머리 속에선 이틀 전날 밤 형수님의 슬픈 표정이 떠올랐다. 



“아직, 이빨이 하나도 안 났네요. 데리고 와 볼까요?”

“아니에요.”



지금 생각으론 아이를 안고 싶어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뒤의 허전함이 두려웠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 그 순간에 이건 내 욕정을 푸는 것이 아니라 

형수님의 욕정을 일깨우는 것이란 점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우미의 역할로 나 자신을 한정시키자 그간의 고민은 눈 녹듯 사라졌고 

말을 꺼내볼 용기가 생겨났다. 나 스스로를 납득시킬 명분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위선이기도 했다. 

명분이 서자마자 형수님의 풍만한 가슴을 사심으로 가득 찬 눈이 되어 바라보게 되었으니까. 

휴식의 끝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수영장 안을 메아리치자 형수님이 일어섰다. 

형수님의 육감적인 몸매를 따라 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늘 밤이 지나면 형님이 온다.’



형수님과 돌아오는 길에 비디오 한편을 빌렸다. 

그 비디오를 보고나니 11시가 넘었다.



“형수님 커피 한잔 주세요.”

“잠 안 오면 어쩌시려고.”

“전 커피 마셔도 잠 안 오는 거 모르겠던데.”

“하긴 저도 그러니까. 그럼 저도 한잔.”



형수님은 거실 바닥에 앉아 있는 나를 등지고 주방으로 걸어가셨다. 

회색 원피스를 입은 뒷모습이 요염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물 끓는 소리가 들리고 커피 잔에 물 붇는 소리, 티스푼이 거피 잔에 부딪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식탁에서 드실래요? 거기로 가져갈까요?”

“식탁에서 마셔요.”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오늘밤은 꽤 덥네요.”

“그러게요. 아직 장마도 안 지났는데. 참, 아이스 커피로 만들어 드릴 걸 그랬나?”

“아니에요. 그래도 따뜻한 커피가 좋아요.”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좀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마음을 굳히면서 혀까지 굳어버린 탓일까? 

커피잔을 채우고 있던 커피가 반도 남지 않았을 무렵부터 조급한 심정이 되었다. 

똑딱거리는 시계추 소리는 나를 더욱 몰아 세우는 것 같았다.



“형수님?”

“네?”

“음…… 혹시 그저께 밤에 하셨던 말 기억하세요?”



순간 형수님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 네. 제가 너무 쓸 데 없는 말을 했었죠? 죄송해요. 제가 술 취해서 실수했다고 생각해 주세요. 망령 들어나 봐요. 저.”

“아니에요, 형수님. 한 번 해봐요.”

“도련님 제가 꺼낸 말이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있을 수 없는, 아니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죠. 부탁드릴께요. 그냥 잊어주세요.”

“사실 저, 오늘 오후까지 마음이 어지러웠어요. 겁이 난 것도 사실이고요. 근데 아까 수영장에서 아기 바라보는 형수님 눈빛보고 마음 굳힌 거에요.”

“……”

“이게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건 저도 알아요. 때문에 형수님께서 조금이라도 부담 느끼신다면 저도 하고픈 마음 없고요. 하지만 잃었던 것을 찾을 수 있는 기회라고 하셨잖아요. 물론 아이가 생기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 동안 하셨던 노력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봐요.”



생각지도 못한 말들이 매끄럽게 흘러 나왔다. 

명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내가 시간을 두고 장고하지 않았다면 형수님의 뒤바뀐 행동에 이의를 달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게 다행스러웠다.



“예전에 국사 선생님이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셨는데 제가 여기 들어와 살게 된 것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에요.”



형수님은 말이 없었으나 의미 없이 커피 잔을 바라보고 있는 눈 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말이 먹히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차분한 어조로 계속 말을 이었다.



“취중진담이란 말 있잖아요. 용기가 나지 않아 술에 힘을 빌리는 거 아니겠어요. 전 형수님이 취중에 실수 하신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 전부터 깊이 고민 하셨겠죠. 다만 미안한 생각 때문에.”

“네, 맞아요. 죄송해서……”

“형수님 그냥 한번 해 봐요.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 때 그만둬도 되잖아요. 전에 봤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요. 그리고 선은 분명히 할게요.” 

“고마워요. 도련님.”



드디어 형수님의 마음을 돌렸다.

한없이 기뻤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냉정함을 잃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신중한 자세인지를 알려줄 결정적인 마무리가 필요했다.



“어디서건, 누구에게건 절대 말하지 않을게요. 물론 형수님도 그렇게 하셔야 하구요.”

“네, 꼭 그렇게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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